예언의 신 읽기:
   
   
   
   
   
   
   
   
   
     
 
 
 
 
   
71장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신인(神人) 그리스도
 

[1902년 11월 22일 안식일, 캘리포니아 세인트 헬레나 요양원에서 한 설교. 이 원고의 한 줄이 원고 선집 115 번에 나타남]

2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계 1:1, 2). 그 다음 절에, 그 종 요한을 통해 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에 의해 축복이 선언되고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많은 목회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책에 관해 어떤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요한 계시록은 많은 사람들에게 닫혀진 책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그것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요한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선언된 축복은 우리의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받아들일 마음의 구조와 신령한 감화에 민감한 심령으로 이 책을 연구한다면, 드러난 진리는 우리에게 성화 시키는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해 기록된 것인데, 이 교회들은 전 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견고한 밧모 섬에 유배되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호의를 받았다.

나이 든 사도가 교회에 그의 구주의 호의를 기록하는 말들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 것인가! “우리를 사랑 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여러 번, 여러 번 이 말씀들은 나를 위로하였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이 예언을 생각해 보자. 214 우리는 구원받았는지 아니면 잃어 버렸는지 알아야 하며, 언젠가 우리는 그분의 모든 영광 중에 구주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이며, 그분의 품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분의 재림의 때에 확신이 모든 심령에 주어질 것이다. 그분을 곁에 제쳐 둔 사람들, 그분으로부터 세상의 사소한 것으로 돌이켰던 사람들, 이생에서 자신들의 유익과 영광을 구했던 자들은 그분이 오시는 날 자신들의 실수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계시자의 말대로 “그를 인하여 애곡하는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우리는 우리 앞에 복음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이것은 그분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본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오늘날 잘못된 말과 행위로 그분을 찌르는 자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분은 매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뇌로 고통 당하신다. 남녀들은 매일, 그분에게 수치를 돌림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거절함으로 그분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고통 당하지 않으셨는가? 그분이 애굽으로부터 이끌고자 하셨던 나라는 한 번 이상 그분을 거절했다. 광야에서 40년 간 유랑하는 동안, 그분께서 택한 백성들을 만나로 먹이시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셨지만 그들은 진리의 증거를 거절했으며, 그분의 빛과 능력을 깨닫는데 실패하였고, 그분의 이적에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그 결과 약속의 땅에 결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셨다. 왜 그랬는가? 그들은 결코 그들의 어린 방법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품성의 특질을 극복하는데 실패했다. 남녀들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났지만, 그들은 남녀의 성인됨에 어린애 같은 결함을 끌어넣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남녀가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본성적인 기질은 그분의 은혜로 부드러워지고 복종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을 계속적으로 다시 못박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완전한 생애를 사신 구주를 모시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우리가 모든 것에서 그분의 뜻을 행하며 이생에서 그분을 따른다면 미래의 삶에서 우리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한, 그리스도를 시야에 모시기를 원한다. 이것이 내 생애의 목적이다. 이것이 내가 사는 이유­그리스도를 영예롭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할 큰 목적이다. 우리는 그분을 바르게 아는 것이 평안과 기쁨과 영생인 분을 알기 원한다.

215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그는 왜 거기에 있었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사도는 그의 노년에도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완고하게 거절하는 것에 대해 반박이 되는 그의 증거를 듣는 데 싫증이 났다. 그들은, 만일 그들이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힘을 주시는 그분을 거절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의 평안을 매우 소란스럽게 하는 요한의 간증을 없애 버린다면, 아주 편안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이 바위섬으로 쫓아 버렸다.

그러나 그를 이곳에 보냈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다다르실 수 없는 곳에 그를 두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섬에서 요한은 자신의 구주와, 세상에 일어날 매우 놀라운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 섬에서 그는 오늘날 우리가 연구하는 그의 비전을 기록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교회를 위해 요한에게 기록하라고 명하신 이 증거는 예언된 모든 사건들이 일어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현대 진리로 남아 있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빛이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라고 선지자는 선언한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1-20 인용).

요한이 그리스도를 계신 그대로 본 것과,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에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가 비록 연약하고 흠이 있을지라도 이것은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최상의 관심을 가지고 계신 유일한 대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이것을 살피고 계시며, 그분의 성령으로 이것을 강하게 하신다. 그분의 교회의 일원으로 우리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위해 감명을 받고 일할 수 있도록 그분에게 허용할 것인가? 우리는 그분이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듣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우리는 그분이 계신 그대로 보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그분을 맞을 때 그들 중에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때, “그를 인하여 애곡하는 사람들” 중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분이 그분의 교회에 주시는 기별에 듣고 순종함으로 우리의 구속을 분명히 하도록 하자.

[계 2:1-3 인용]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그리스도의 임재는 그분의 교회와 항상 함께 있다. 그분은 계속적으로 그분의 대표자들에게 지식과 은혜를 주고 계시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를 기대하신다. 216 그분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라,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이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이 그분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분은 복음의 대사명을 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가? 만일 내가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나는 확신하건대, 큰 집회에서 나의 증거를 말하기 위해 전에 내가 여행한 것처럼 여기 저기를 여러 해 동안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만 해도 나는 세 차례 장막회에 참석했다. 이 달 26일 나는 일흔 다섯 살이 된다. 열 여섯 살 이후,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내게 명하신 것을 대중 앞에서 말하면서 끊임없이 일해 왔다. 나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통과해 왔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항상 나를 붙들어 주셨다. 그분의 도움 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분은 내가 느낀 모든 고뇌의 고통에 동감하신다. 그분의 손은 선을 위해 나에게 여러 번 놓여졌다. 여러 번, 그분은 나를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건강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심지어 내 친구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내게 생명을 주셨고, “가라, 가서 내가 네게 계시해 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기별을 주셨다. 이것이 내 사업이 되어 왔다. 성령의 위로는 내게 최고의 가치가 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다. 나는 어떤 언어가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내 구주가 영광스럽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안다. 그분은 가장 사랑스러운 분이시며, 만인 중에 으뜸이시다. 나는 그분이 사랑스러우시며 동정이 많은 구속주이심을 경험으로 알며, 다른 모든 이들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한다.

에베소 교회의 형제 자매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서로를 위한 사랑을 간직하라고 경고 받았다. 그들의 선행을 칭찬한 뒤, 구주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는 구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빛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소망 없이 어두움 안에서 행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공언하는 제자들의 사업을 보시며 일곱 금촛대­그분의 교회­사이를 걷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을 행할 수 있도록 그분의 성령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다.

217 이제 요한 계시록 3장을 읽어보자[계 3:1-4 인용].

우리는 “합당한 자”중에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어린 시절의 결함을 간직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지 않은 모든 것을 치워 버려야 한다. 그분은, 그분의 아버지의 품성의 대표되는 것을 인류에게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그분의 모든 필요에 봉사하도록 거룩한 천사들의 수종에 둘러 싸여 영광 중에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 하늘 궁정의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왕관과 왕복을 제쳐 두시고, 신성에 인성을 옷입으시고 무력한 아이로 세상에 들어 오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의 가난함을 통해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다.

만일 그분의 신성이 인성의 외모로 옷입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와 사귈 수 없으셨으며, 그들의 구속주가 될 수 없으셨다. 그분은 진정한 구주가 되시기 위해, 우리가 통과하도록 부름 받는 모든 시련의 권세를 아셔야 했으며, 시련과 어려움을 통과하셔야 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 중에 그분은 시련을 당하셨다. 하늘에서 쫓겨난 힘센 원수 사단은 지상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고 오래 주장해 왔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이 원수를 정복하시고 우리가 신령한 은혜를 통하여 우리 영혼의 대적을 이기는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머리에 서셔서 완전한 순종을 통해 온 우주에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모든 상황에서­전도가 밝은 때나 역경의 때, 받아들여지실 때나 거절되실 때, 결혼 잔치에서나 배고픔의 고뇌 중에서 고통 당하실 때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의 교훈에 충실하게 남아 있었으며, 우리에게 완전한 생애의 모본을 이루어 주셨다. 그분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에게 다가 오는 모든 어려움을 견디셨다. 그분은 죄없이 고통 당하시고 피곤함과 배고픔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당할 모든 불편함을 이해하셨다. 어릴 때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분은 순종의 시험을 승리하셨다.

예수께서 시험 당하시기 위해 광야로 이끌어졌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를 받으셨다. 그분은 시험을 자초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홀로 그분의 사명과 사업을 명상하기 위해 광야로 가셨다. 금식과 기도로 그분은 그분이 가셔야 할 피묻은 길을 스스로 준비하셔야 했다. 그러나 사단은 구주께서 광야로 가신 것을 알았고, 이것이 그가 그분에게 접근할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배고픔으로 연약해지고 메말랐으며, 정신적 고뇌로 지치고 수척해지심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다. 218 이제 사단의 기회였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시험은 식욕에 관한 것이었다. 그분의 기도에 응답이기나 한 것처럼 하늘로부터 온 천사의 모습을 한 자가 구주께 나왔다. 그는 그리스도의 금식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라는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가지고 왔다고 주장했다. 구주께서는 배고픔으로 몹시 지치셨으며, 그분이 음식을 갈급하고 계실 때 사단이 갑자기 그분에게 나타난 것이다. 빵조각으로 보이는, 빈터에 널려진 돌을 가리키면서 시험하는 자는 말했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그가 비록 빛의 천사처럼 보였을지라도 이 첫 번째 말이 그의 특성을 누설하였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에 불신의 암시가 있다. 예수께서 사단이 제안한 것을 행하셨다면 그것은 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면 사단은 모든 쟁투의 승리는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낙담의 힘과 극도의 배고픔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자신을 위하여 이적을 행할 것을 바랐다.

예수께서는 대기만자에 대해 침묵하면서 하나의 투쟁도 없이 들으실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사단에게 그분의 신성을 입증해서는 안되었다. 그분은 성경 말씀으로 시험하는 자를 대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모든 시험에 있어서 그분의 전투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시험하는 자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천 사백 년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하신 말씀을 반복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동일한 말씀이 우리의 경고를 위해 기록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 심장의 움직임과 박동을 지키시는 분과 교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이 낮은 곳에 있는 그분의 큰 가족들 구성원 각자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고 계신다. 그분은 그대들의 신실한 존경과 열렬한 헌신을 받으실 만하다. 그분이 그대들을 위해 하신 것을 생각할 때, 어떻게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은 그대들이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터전에 설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를 위한 대속물로 주셨다.

만일 세상이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주장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일반화된 두려운 죄를 보고 들을 수 없다. 우리는 매일 신문에 연재되는 자살과 사악함과 학대를 읽을 수 없다. 홍수 전에 거민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

두 번째 시험은 추정에 대한 것이었다. 219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사단은 이제 예수님을 그분의 견지에서 대면하고 있다고 제안하였다.

교활한 대적은 스스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을 제시하였다. 그는 자신이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라는 말을 인용했을 때,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시리라”는 말, 곧 하나님의 택하시는 모든 길에서 지키시리라는 말을 생략했다. 예수께서는 순종의 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절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섭리를 강요하고자 하지 않으셨으며,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신뢰와 순복의 모본을 주시는 것에서 실패하고자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 결코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좋은 모든 일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사단에게 선언하셨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길 안에서 행하는 모든 사람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서 떠나고자 하는 것은 사단의 터전으로 모험하여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분명 실패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두 번째 시험에서 승리자가 되셨으며, 이제 사단은 자신이 이 세상의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본성을 드러냈다.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가게 한 후, 사단은 세상 왕국을 그 찬란한 영광 중에 파노라마처럼 보이며 그분 앞으로 지나가게 했다. 이제까지 매우 우울함과 쓸쓸함만 보아 오셨던 예수님의 눈은 이제 매우 큰사랑과 좋은 전망의 장면을 바라보게 되셨다. 이 때 유혹자의 음성이 들렸다.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 4:6).

그리스도의 사명은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그분 앞에는 슬픔과 어려움과 투쟁의 삶과 수치스러운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최상권을 인정함으로 두려운 미래로부터 자신을 구출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대쟁투에 있어서 승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은 고통 당하는 인성을 통해 번쩍이었다. 사단은 떠나라는 명을 버틸 힘이 없었다. 비참해지고 분노하여 그는 세상의 구속주의 임재로부터 물러가도록 강요되었다.

대적이 떠난 뒤, 예수께서는 땅에 완전히 엎드리셨다. 그분은 시험을 견디셨으나, 전쟁터에서 지치시고 말았다. 220 그분의 머리 밑으로 어떤 손이 받쳐져야 했는가? 그분이 다시 힘을 회복하기 위해 관심과 영양분이 어떻게 주어져야 했는가? 그분은 승리를 얻으신 후에 스러지도록 버려 지셔야 했는가? 오, 아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이 투쟁을 지켜보았으며, 이제 그들이 와서 마치 죽은 자처럼 누워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시중 들었다. 그분은 음식으로 힘을 얻으셨으며, 아버지의 사랑의 기별과 그분의 승리에 온 하늘이 환희에 찼다는 확신으로 위로를 받으셨다. 그분은 광야로부터 돌아오셔서 그분의 자비와 구원의 기별을 능력 있게 선포하시게 되었다.

만일 사단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떤 소망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세상과 천사들과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에는 사람이 순종할 수 없는 제약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충족시키기를 요청 받는 모든 요구들을 만족시키셨다. 그분이 자신 앞에 있는 큰 사업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받아들이신 것은 침례식을 하신 직후였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기 위해 오시자, 요한은 그분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죄인인 그가 어떻게 무죄한 그분을 침례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제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텐데 당신이 내게로 오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요한이 순종하여 그의 주님을 물밑에 장사지냈다. 곧 물에서 올라오셔서 그분은 강둑에서 기도를 올리셨다. 그분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가?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높이 드셨으며,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힘을 간구하셨다. 타락한 인류의 구원이 그분의 팔에 달렸으며, 그분은 당신의 팔을 펼치셔서 전능하신 사랑의 손을 잡으셨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인성 안에서 인간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에 대해 증거를 요청하셨다.

아버지 자신이 그분의 아들의 간구에 응답하셨다. 보좌로부터 직접 그분의 영광의 광선이 비춰 나왔다. 하늘이 열렸으며, 구주의 머리 위에 번쩍이는 금비둘기가 내려 와서 온유하고 겸손한 분의 상징에 부합하였다. 하늘의 빛이 인자를 감쌌으며, 높은 하늘로부터 이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221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한 이 응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표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단의 지옥 같은 그림자를 거두시고 무한하신 분의 보좌에 이르셨다. 그분의 기도는 아버지에 의해 들으신 바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기도도 하늘 궁정에서 가납됨을 발견한다. 예수께 말한 음성이 모든 믿는 영혼들에게 말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녀요 내 기뻐하는 자라.”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분께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왜 대적의 시험에 굴복할 만큼 그렇게 연약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의 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는가? 우리는 왜 매번 급하게 말하는 시험을 당할 때 극복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한 것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모든 시련의 시간에 우리는 압도적인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능력을 통해 승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이 그리스도를 범죄 하게 하려는 모든 노력에서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주어진 빛과 조화되어 지혜롭게 행동한다면 그는 우리를 이기려는 데서 실패할 것이다. 여러 해 전에 나는, 내가 불공평하고 악하게 취급된다고 느껴서 대적이 급하게 말하라고 나를 시험할 때, 입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다. 만일 내가 대꾸하기 위해 한 마디라도 한다면, 대적은 거의 분명하게 승리를 얻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침묵 안에 웅변이 있다. 흑암의 세력과 함께 싸움이 일어날 때 우리 혀를 재갈먹이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승리자들이 될 것이다.

악한 자들은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함께 잴 수 있는 그런 생명을 원한다.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움 안에서 왕을 뵙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분이 권세와 큰 영광으로 오실 때 주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다. 마지막 때까지 우리는 모든 시련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얻어야 할 하늘이 있고 피해야 할 지옥이 있다. 남녀들은 영원한 유익에 관한 사물에 대해 열렬해야 한다. 우리의 사업은 힘센 분의 능력을 의뢰하도록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긴 인성의 팔로 타락한 인류를 감싸고 계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의 신성의 팔로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붙들고 계신다. 그분은 문을 여셔서 죄가 많은 자라도 아버지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발견하도록 하신다. 그분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작은 어린이에 불과하다. 성인 남녀로 성장한 사람들, 배움의 많은 것을 획득한 자들, 이 지상에서 고상함의 선두에 선 자들, 이 세상의 많은 부와 명예를 받은 자들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린 아이 그 이상이 아니다. 그들은 그분에 의해 저울에 달린 작은 먼지로 여겨진다. 시편 기자는 묻는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222 나머지 모든 우주와 비교하여 이 세상 사람의 매우 작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셔서 스스로 인성을 쓰시고,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고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성한 영혼에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 그분의 무한하신 희생을 비추어 볼 때, 남녀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큰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자신들을 그분의 사업에 전적으로 드리기로 공언한 뒤에 그들의 구주를 잘못 나타내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그분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분은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가 그들의 자녀들을 붙잡고 있는 동일한 부드러운 관계로 우리를 붙잡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분은 물으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분은 믿음으로 구하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기꺼이 주시고자 하신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연약하며 믿음이 없는가? 우리는 왜 품성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왜 언제나 우리가 필요한 것에 대해 어린이같은 믿음을 가지고 단순하게 구하기 위해 하늘 아버지께 오지 않는가?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린 자녀들”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가족들의 상태이다. 지식과 이해에 있어서 우리는 어린이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한 언어로 가르치시기 위해 자원하셨다. 아무도 그분이 영생을 얻는 법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사용하신 단순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이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분의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이 위로를 전하신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분의 지상 봉사를 마치시고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 가셨을 때, 하나님 도성의 문의 번쩍이는 돌쩌귀가 뒤로 젖혀지고 그분은 승리자로서 들어가셔서 그분이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자들을 위해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를 시작하셨다. 신성과 인성을 겸한 하나님의 아들은 이제 아버지 앞에 서셔서 우리의 송사를 위해 탄원하시며 우리 죄를 위해 대속하고 계신다. 223 이렇게 해서 그분은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 우리의 이름을 공언하신다. 그분의 손은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자국을 가지고 있다. 그분은 외치신다. “보라 내가 너희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다!” 그분은 우리가 마침내 승리자로서 하늘 도성에 들어갈 것을 바라신다.

인간에게 끊임없이 주시는 은혜를 통해 그분은 사람들이 영원의 다함없는 세대를 통해 그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기로 택하는 모든 사람은 이 예비된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처럼 무료로 주신 구원을 받아들임으로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자.

[계 3:7, 8 인용]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사단의 간계의 문을 닫으시기 위해, 영원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행하셨다. 그분은 그분의 축복을 소수에게만 제한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우리는 이것을 읽는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계 3:10-12 인용]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에 가능하도록 하는 모든 유익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를 위해 그분은 무덤에 누우셨다. 그분이 죽음에서 일어나셨을 때 요셉의 빌린 무덤 위에서 이렇게 선포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분은 만일 우리가 그분의 신실한 대표자라면 참으로 우리의 생명이시다. 우리는 사단의 대표자가 될 수 없으며 죄인들이 하는 것처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견뎌야 하고 그들의 최후의 상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길은 영원한 사망으로 이끈다. 순종의 길은 영생으로 인도한다. “그분의 계명을 행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도성을 통하여 들어갈 권세를 얻기 때문이다.” 만국에서 온 구속받은 자들이 하늘의 본향에 들어갈 때에 그들은 생명 나무에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한 천사가 했듯이 불타는 화염검을 가진 천사가 지키기 위해 서 있지 않을 것이다.

승리자에게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헤아릴 수 있는 생명이 약속되어 있다. 승리자들은 축복의 모든 하늘을 갖게 될 것이며, 시험하는 마귀도 없고,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나 죽음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하늘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에 있기를 결심한다. 우리 모두 우리 주요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얻기 위해 애쓰자.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사물로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224 아, 우리는 병들고 고통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고 계신 아름다운 영광을 보게 되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을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만나기를 소망한다. 나는 그곳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분의 아름다움 안에서 왕을 뵙기를 원한다. 나는 예수님의 발에 그들의 빛나는 면류관을 던지며 금하프를 켜고 온 하늘에 풍성한 음악과 어린양의 노래를 가득 채우는 하늘의 모든 주재들을 보기를 원한다.

그대들은 거기에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그곳에 있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이 이곳에 있기를 소원하신다. 천사들도 그대들이 이곳에 있기를 갈망한다. 우리 끝날 까지 주께서 선언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요한 계시록을 부지런히 연구하도록 하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이 약속을 기억하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1902년 원고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