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읽기:
   
   
   
   
   
   
   
   
   
     
 
 
 
 
   
66장 그리스도인의 소망
 

[1901.10.5, 캘리포니아 세인트 헬레나 요양원 강당에서 한 설교]

17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1, 2).

매우 중요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풍성하다는 확신을 준다. 이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의 가치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주로서 우리를 지탱하고 계신 관계의 풍성한 빛을 던져 주는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그분의 제자들은 소망을 잃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예루살렘의 다윗의 보좌에서 통치하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처참하게 실망했다. 부활의 날 오후 늦게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8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이 두 제자는 그리스도의 사업에서 뛰어난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그분을 열렬히 믿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그 도시에 왔었으나 최근에 일어난 일로 크게 당혹하고 말았다. 그들은 무덤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이동되었다는 아침의 소식을 들었으며, 천사들을 보고 예수님을 만났다는 여인들의 소식도 들었다. 그들은 명상하고 기도하기 위해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슬픈 마음으로 저녁 발길을 옮기고 있었으며, 두려움과 십자가의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진실히 믿었던 분에 대한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을 회상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신 주님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눅 24:15-17). 172 “당신이… 알지 못하느뇨…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여늘 잔인한 손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고 그들은 대답했다. 이 낯선 분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예수에 관하여 예언된 것을 그들에게 말씀해 주었다. 그분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집에 다다랐으며, 자기들과 동행한 분을 들어오도록 청했다. 그분은 더 가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그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간청했다.

준비된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제자들은 빵을 들고 축사하려고 할 때 이 손님의 낯익은 손동작을 보고 강하게 충격을 받았다. 그 동작은 자신의 주님과 이상하리만큼 닮은 것이었다. 그분이 자신의 손을 드셨을 때, 그들은 못 박힌 표를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은 소리쳤다. “이 분은 주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죽음에서 일어 나셨다!”

그들은 일어나서 그분의 발에 자신을 던져서 절했으나 그분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최근에 그 몸이 무덤에 안치되었던 분이 앉으셨던 자리를 보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러나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이 그냥 앉아서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쇠약함과 배고픔은 사라졌으며, 음식 맛을 보지도 않고 그들은 서둘러 험한 길을 되짚어 그 도시를 향해 돌아갔다. 그들은 구주께서 그들과 함께 여행하시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예루살렘에 들어서자, 그들은 제자들이 모여 있는 집으로 갔으며, 닫혀 있는 문에 신호를 보내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제자들은, 무덤에 가 보았고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셨다고 선언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 때에 이 두 제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으며, 그분이 성경을 열어 그들의 이해를 도울 때 마음이 뜨거웠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구주가 정말로 살아나셨는지를 믿을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때에, 다른 한 사람이 그들 앞에 서셨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 낯선 분에게 쏠렸다. 그 때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분의 입술로부터 분명하고도 명확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173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 불신 대신에 믿음과 기쁨이 자리잡았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그들은 살아나신 구주를 알아보았다.

구주께서 요셉의 무덤에 놓이신 후, 큰 돌 하나가 그 앞에 굴려지고 봉인되었다. 로마 군인들이 무덤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파수하는 자리에 서 있을 때, 아, 무덤에서 큰돌을 옮기라는 명을 받은 강한 천사가 어두움을 가르면서 하늘 영광 중에 빛을 안고 나타났다. 놀란 파수병들은, 그 천사가 마치 조약돌 하나를 옮기듯이 손쉽게 그 큰돌을 굴려 놓는 것을 보았다. 영광스러운 빛은 그 사람들을 마치 죽은 사람처럼 땅에 엎드러지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시는 것을 충분히 보고 알았다.

요셉의 빌린 무덤 위로 그리스도께서는 선언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나신 구주가 계심을 인해 기뻐하자. 예수께서는 포로된 자를 이끄시며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20). 그분은 위로 올라가시며 그분을 호위할 영광스러운 천사들과 함께 하시기 전, 펼쳐진 손으로 그들을 축복하셨다.

두 천사가 뒤에 남았다. 그들이 주님을 이끌어 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천사들의 음악을 듣고 있을 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0, 11).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원한다.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임하고 있다. 이 시간에 관해 계시자 요한은 말한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 2).

존재의 자연 법칙에 대항하여 일하는 자들은 범법의 형벌로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우리 자신의 행동의 잘못 때문에 생긴 연약함으로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분 안에는 우리를 위한 치료의 능력이 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이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는 생명 나무를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자.

174 “다시 저주가 없으며.” 모든 곳에 저주의 결과가 있다. 세상을 새롭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3절). 어떤 사람들은 참된 봉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어떤 여흥에서 노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음악과 가사를 익히며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처럼 하늘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그분을 잘 알고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한 것을 배우며 지금 그분을 섬기는데 들어가야 한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 모든 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봉사의 의미를 스스로 배워야 한다.

다음 성경절을 특히 유의해 보자. “그들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영광이 구속받은 자들에게 임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은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그들은 그분의 보좌에서 다스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미래에 불멸의 생명을 위한 품성을 형성하면서 순종함으로 그분을 섬겼기 때문이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5-7절).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타락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리한 곳에 서 있다.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고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는 우리의 지성이나 말이나 부요함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보호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야 하는 때에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를 파괴하려고 하는 어두움의 세력을 이길 수 없다. 175 성령은 우리의 길에 빛으로 비취고 있다. 우리 모두 우리를 돕기 위해 언제나 우리의 오른편에 계신 그리스도께 신뢰를 두도록 하자. 그분은 우리를 궁핍하게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 7).

시험이 올 것이다. 그러나 사단이 그의 지옥 같은 그림자를 우리 앞에 던질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 그림자를 뚫고 생명의 빛에 다다라야 하며,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분에게 이르러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귀한 유업이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므로 우리 구원을 이루는 일에 그분과 합력 해야 한다. 시련과 시험의 와중에서 그분의 손은 우리를 붙잡고 지탱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쉬는 사람들은 결코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그분은, 신실하신 창조주이신 그분께 우리 영혼을 맡기도록 명하신 그대로 작정하신다.

끝까지 그들의 믿음을 굳게 잡는 사람들은 일곱 번 단련한 정금같이 시련의 도가니에서 나올 것이다. 이 일에 대해 선지자 이사야는 말한다.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 시련 중에 있을 때, 시련의 도가니에서 단련된 믿음이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매 순간 그대의 품성의 마지막 찌끼까지 없어지는 것을 살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때에 그대는 오빌의 순금보다 더 귀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짐으로 타락한 인간은 이 순결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의 부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사라질 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시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영광의 소망, 불멸의 생명의 열매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생의 분명한 소망을 인해 매우 감사한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였으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귀한 생명을 바친 후, 그들에게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거의 말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에 충분한 힘을 주시는 데 실패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176 그분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승천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우리의 구속을 위해 인류의 머리에 서신 그분에게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 거의 6 주일 동안, 무죄하신 분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흑암의 세력을 이기면서 시험의 광야에서 투쟁하셨다. 이렇게 해서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이 그분의 무죄함의 공로로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8-12). 천사들은 예언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듯이 그것이 펼쳐지지 않음으로 보지 않았다. 모든 세대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깨달았으나 특별히 이 세대는 예언의 성취를 가장 분명하게 보았고 깨달았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3-16절).

이생에서 거룩함을 실행하는 사람들만이 그분의 아름다움 안에서 왕을 뵐 것이다. 모든 헛되고 천박한 대화를 버리고, 보잘것없고 감각적인 것들을 버리라. 세속적인 유흥과 쾌락적인 생각으로 그대의 마음이 빠지지 않게 하라. 그대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종사하라. 만일 그대의 영혼을 잃게 된다면 그대는 거듭나지 않았던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영혼을 잃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생명을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매 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암흑의 세력이 그대에게서 승리를 얻지 못하도록 그것을 저항하여 힘을 내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절). 177 이것은 비열한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이다. 그대가 그분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영원하신 팔이 그대 주변에 있으며, 대적은 그대를 속이거나 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 중심이 있는 믿음은 요동할 수 없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로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18-21절).

그 결과를 주시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22, 2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동정심 있게 서로를 대했다면 이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왔을 것인가! 가정 생활에는 어떤 변모가 있었을 것인가! 이 교회 안에는 미래의 불멸의 생명을 위해 교육받고 훈련받아야 할 가족들이 있다. 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능력이 안전한 길로 그들의 발을 인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교회의 교인들은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것이 참된 생명의 양식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분은 이것을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성경은 생명 나무의 잎과 같다. 시작부터 끝까지 성경은 약속으로 가득차 있다. 거의 4 주일 동안 나는 밤 한 시 이전에 잠들 수 없었다. 밤마다 나는 깨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와서 백성들에게 진리의 힘과 능력을 알 수 있게 도우며, 그들에게 진리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안에서 그것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교회와 합력 하실 수 없다. 그분은 그분의 교회가 원기가 넘치기를 바라시며, 산 믿음으로 그분의 능력을 붙잡기를 원하신다. 시련이 참된 교회에 올 것이다. 어떤 교인들은 기만하는 영에 주의를 빼앗기면서 믿음으로부터 떠날 것이다. 사단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면서 그리스도로 나타날 것이다. 178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다” 라고 말하며, 다른 한 사람은 “그분이 저기 계시다”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도 어딘가에 계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그분의 의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놓으신 높은 표준에 도달하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소망과 찬양, 쾌활함, 기쁨, 감사로 가득 차서 하나님과 함께 유리한 터전에 서 있는 것은 특권이다.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도록 우리 자신을 교육시키자. 그분의 말씀을 먹임으로 우리 심령에 영적인 것을 보다 더 가져오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식욕을 부정하는 시험을 견디셨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처럼 그분을 위해 이 시험을 견디겠는가? 우리는 잘못 먹음으로 소화 기관을 망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와 술, 기타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황폐시키고 있다. 이것은 아무에게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케 하도록 그분의 영을 우리 손으로 취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정욕을 인하여 우리를 파괴시키려고 애쓰는 마귀를 대적하도록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이 언덕에 있는 요양원에 오는 사람들은 기관에 있는 조력자들에게서 참된 그리스도교의 가장 높은 모본을 보아야 한다. 건물 안에서 일하는 조력자들이나 땅에서 일하는 조력자들은 그들이 제자들에게 주어진 복된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 그들의 심령은 소망이 없는 자들의 구원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그들은, 식욕의 부패함을 그들이 이기도록 도울 수 있기 위해 기도하면서, 고통 당하는 자들의 영혼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한다.

간호사들은 성경을 잘 알아야 하며, 이 풍요한 보고에서 그들은 환자들을 위한 위로와 위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생명의 떡, 생명 나무의 잎을 먹기를 원하시며 그들 주변에 있는 환자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환자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이 기관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편만 해야 한다.

어려운 장소를 통과해야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있다. 그러나 몹시 애쓸 때, 육신의 팔에 그대의 신뢰를 놓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팔 안에 놓아라. 어려움과 시련의 때에 어떤 발걸음을 떼어야 할 지를 말씀해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분을 믿어라. 그분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하시며, 만일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을 신뢰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 그분이 오시기 직전에 일어나리라고 구주께서 예언하신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이 지금 우리 앞에 행해지고 있다. 179 이 때에 관해 그분은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홍수 전의 세상 사람들도 거의 무관심하였으며, 정해진 때가 되어 홍수가 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다. 노아에 의해 주어진 경고를 믿었다면, 그들은 사악함 가운데 행해진 모든 것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멸망이 왔다. 불신은, 능력과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 가운데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다. 능력과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 중에 그분이 속히 나타나실 것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구주께서 오실 때, 그분을 맞기 위해 준비한 사람들은 크게 외칠 것이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사 25:9).

나는 주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한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내 곁에 계신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분의 약속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를 떠나가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음으로 그분의 아름다움 안에서 왕을 뵐 때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의 문이 곧 번쩍이는 돌쩌귀 뒤로 열리게 될 것이며, 진리를 지킨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이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들어 와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 그들은 금하프를 타면서, 풍성한 음악과 어린양에 대한 노래로 온 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시들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이 구속받은 자들을 위해 하늘에 준비되어 있으며, 이들은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 왕과 제사장들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망인가! 아,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준비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이다.­1901년 원고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