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읽기:
   
   
   
   
   
   
   
   
   
     
 
 
 
 
   
57장 진리의 누룩
 

115 하늘 나라는 느낄 수 있으며,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인 역사는 효모와 비교된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다.

심령에 감추어진 진리의 누룩은 경쟁의 정신이나 야망에 대한 사랑, 첫째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모든 성별된 능력을 하나님의 나라에 가져오도록 향상되고 증가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재능을 위탁하신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금과 은과 세상의 소유에 종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능력을 남용하였으며, 하나님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고 구상한다. 그들은 사고 팔면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다가갈 수 있는 것­하나님 보시기에 큰 가치가 있는 생명의 떡, 온유하고 안정된 정신의 장식에 놓여 있는 고귀한 것은 갖기를 소홀히 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은 줄로 믿으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청지기로서 사람들에게 복을 끼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을 신뢰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방법으로 사용될 때만 돈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만 탐욕적이고 자신에게 영화를 돌리기 위해서만 사용될 때, 돈은 저주가 되고 장애물이 되며 계속적인 시험이 된다. 그것은 수천의 영혼들에게 거치는 방해물이 되고 시험과 온갖 종류의 불법에 빠지는 것이 되었다.

디모데전서 6장은 하나님께 수치를 돌리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심령의 깨끗함과 사랑과 연합을 추구하여 그들의 영혼에 감추어진 진리의 효모를 나타내는 대신에, 그들은 애정을 꼴 짓고 영혼을 성화 시키는, 심령 안에 진리의 효모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교만하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4, 5절).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런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경고한다. (6-10절, 인용).

참되고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성화를 믿는 사람으로 나타낼 것이며, 그의 사업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것을 증거할 것이다. 116 사도는 계속해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11, 12절) 라고 말한다.

주어진 교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훈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예증하신다. 내적으로 역사하는 진리의 누룩은 생애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심령은 모든 불순결한 것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한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라도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품성의 특질에 적합해져야 한다. 누룩이 많은 양의 밀가루에 처음 섞여서 변화시키는 과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밀가루가 빵으로 변화될 때까지 일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도록 역사 해야만 한다. 새로운 재능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재능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철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본성적인 성향이 부드러워지고 굴복된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동기가 심어진다. 그러나 모든 재능이 재생되는 한편 사람은 그의 신원을 상실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1-8).

여기에 심령 안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변화를 보여 준다.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성경은 이 변화에 있어서 큰 도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라고 기도하셨다. 이 큰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이다. 신령한 대리자와 함께 인간 도구들의 합력이 있어야 한다.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그 안에 누룩이 감추어진 밀가루는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 심령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만이 안에서 홀로 역사 하실 수 있는 원칙을 이루신다. 세상은 이 부류의 사람들을 자신들이 풀 수 없는 신비로 바라본다. 이기적이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자신의 세상적인 보화를 즐긴다. 그러나 그는 영원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아는 데에서 영원한 세상을 상실한다. 그러나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모든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그들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한 실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품성을 변화시키는 동기 유발의 힘이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받아들인 구속하는 영향력이 가루 안에 숨겨진 누룩처럼 역사하고 있다. 117 예수님의 사랑이 온 존재와 영혼과 몸과 영을 정복하기 위하여 구속의 능력과 함께 심령 안에 들어 왔다.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항하기 위해 반대되는 영향이 역사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다른 동기를 지배하며, 세상의 더럽히는 영향 위에 인간 도구를 일으킨다.

그는 믿음과 기도 안에서 예수님께 접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돌아가신 그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믿는 영혼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온다. 그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 부류의 사람은 세상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동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래서 세상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열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는 그것을 위해 일하고,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그것을 구하고, 모든 불필요한 욕구를 제거하고, 모든 필요하지 않은 지출을 삼가고, 그의 소유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세상에 그리스도 없고 소망 없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큰 사업에 사용된다. 이렇게 하여 그는 세상의 구속주와 합력하며, 그분은 그분의 가난함을 통해 우리가 부유하게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

우리의 위대한 구원자, 그분은 하늘의 궁정을 버리셨다. 모든 천사들의 사령관께서 그분의 왕복과 명예로운 면류관을 제쳐 두셨다. 그분은 인성으로 인성을 만질 수 있도록 인성으로 신성을 옷입으셨으며, 신성이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능력을 잡을 수 있도록 하셨다.

안일과 쾌락을 사랑함과 자고 하는 것은 그분의 생애를 특징짓지 아니하였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이셨다. 그분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었다.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 하나님께 남김 없는 순종을 하는 모든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의 구주여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고통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눌 것이다.

우리가 믿는다고 공언하는 진리는 우리 영혼을 성화 시키는가? 만일 그렇다면 결과는 나타날 것이다. 누룩의 침투하는 능력이 가루에 전적인 변화를 일으키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영혼 안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성경 안에 담겨진 진리는 단지 하나의 이론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의 심령에 변화를 일으켜야만 한다.

그러나 의문이 일어난다.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왜 말과 정신과 품성에 있어서 변화를 볼 수 없는가? 그들은 그들의 목적과 계획의 어떤 반대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들은 거룩하지 못한 기질을 나타내며, 그들의 말은 거칠고 고압적이며 정욕적이다.

118 주께서는 우리를 심판자로 만들지 않으셨으나 우리는 이런 어려움들을 교회 안에서 만난다. 이런 사람들은 회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진리는 사람의 심령에 역사 하는 특권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의의 햇빛은 영혼의 성전에 비춰지지 않았다. 악을 행하는 본성적이고 배양된 성향은 진리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의해 작용되지 않았으며, 선입견이 고귀한 보석처럼 남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품성의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과 계획과 형태에 있어서 그의 사업과 관련된 작은 것들을 생각하기 위해 종교적인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과 연결시켜 놓은 사람은 반대 없이 지나쳐야 했다. 주께서는 그런 자리에 사람들을 놓으셔서 그들이 자신들을 아는 기회를 갖게 하고 자신들에게 주의하는 것을 배울 기회를 주신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변경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이 자신 안에 있는 불완전함을 발견하고 자신들이 결정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연결되도록 하나님에 의해 지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누룩이 심령의 애정과 습관과 행습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들 안에서 변화를 이루지 않았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생애의 습관과 행습을 자유롭게 내버려두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교정 받기를 거절했다. 그 까닭은 그들은 눈을 자신들의 결점에 대하여 닫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습관과 행동이 고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왔으며, 자신들이 보기에 완전하다는 스스로의 생각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진리의 누룩은 가루 위에 역사 하는 누룩처럼 그들의 심령에 작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다른 통로로 이끌지 않았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실 수 없었다. 이것이 그처럼 많은 불화와 조화로운 행동의 결핍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각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들 자신의 행로와 말, 그리고 논리가 맞으며 어떤 변화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이 될 수 있겠는가? 모두 한마음이 되기 위해 애쓰자. 119 또한 동시에 어떤 일꾼의 의견도 의문 없이 따르는 일이 없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누룩이 가루에 역사 하는 것처럼 작용하고 영향을 줄 때만 축복이 될 수 있다. 사도는 말한다. [빌 2:1-5; 골 3:12-16; 롬 12:3-10, 15:1-7; 고전 1:10; 고후 13:11; 롬 12:16; 갈 5:22-26 인용].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약 3:13-18 인용].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신다. [요 15:8-14, 13:34, 35 인용].

이 사랑은 얼마나 넓고 완전한가! 사도들은 그 계명의 새로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했다. 이것들이 그 안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꼴 지어졌다는 신임장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요셉의 빌린 무덤 위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신 후, 갈릴리에서 그분을 보기 위해 모인 오백 명에게 말씀하신 후, 그리고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서로에게 자신들이 해야 할 사랑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을 때 그 사랑이 드러났다. 요한은 그의 형제 제자들에게 이렇게 외칠 수 있었다. [요일 3:16-18, 4:16-21 인용].

여기에 우리 서로에 대한 종교적인 의무가 신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진정한 종교적 경험과 진리를 통한 성화의 시험과 측정이 분명히 정의되어 있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의 경로는 신령한 모본을 따라 꼴 지어져야 한다. 말씀의 가르침은 우리 서로에게 배양해야 할 사랑에 관하여 분명하며 명시적이다. 심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누룩과 같게 될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진리는 영적인 생명을 위한 우리의 떡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누룩은 생명을 주는 그의 능력을 통해 마음과 정신과 능력에 신령한 생명과의 완전한 조화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우리를 위한 위대한 원칙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깨끗하고 거룩해서 일상적인 삶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개인적인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말씀이 간직하고 있는 고귀한 보화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서로에게 매는 금줄과 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를 사랑함으로 우리는 영혼의 성화와,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을 받는다. 진리의 누룩이 심령에 심어질 때, 그것은 마음과 영혼과 힘의 모든 능력을 자신에게 흡수해 들인다. 그것은 사람에게 새로운 본성을 심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는 더욱 더 자라난다.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은 기억에 담겨져야 하며 정신과 심령에 기록되어야 한다. 120 그분의 종 바울을 통하여 주께서는 우리 앞에 이것을 생각하도록 놓으셨으며, 교회의 영역 안에 들어오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지혜롭고 지성적으로 연합되게 하셨다. 몸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모양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표하며 그 구성원의 관계는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

이 장은 교회의 영역 안에 들어 온 공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연구되고 살펴져야 하는가, 아니면 무시되어야 하는가? 교인들의 한 가지 큰 필요는 순종의 길에서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동행하는 것이다.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 11:16-19 인용. 마 18:1-6 인용].

진리의 누룩이 심령 안에 감추어질 때, 그것은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공고하게 이끌어 내는 힘있는 동력이 된다. 마음과 애정과 동기 ­모든 능력들­는 진리를 통해 변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같은 성령으로 일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주가 아니요 화평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하나의 커다란 실제적인 필요­믿음을 통한 영혼의 회심을 충족시킨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에 대한 일관성 있는 순종 안에서 그 믿음은 품성의 거룩함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진리들은 하늘에 이르며 영원을 감싸는 진리이며, 그러한 진리의 힘있는 영향은 인간 생활 안에 짜여진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은 우리의 말과 행위와, 모든 우리의 가족들과 낯선 자들과의 교제에서 성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야 한다. 진리의 누룩은 기질과 태도를 지배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 안에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이 “사소한” 모든 것들은 큰 결과가 있다. 영혼을 훈련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한 마음과 큰 책임감으로 행동하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이 이 작은 일들이다.

왕족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경건을 고양하고 조성하는 엄숙한 언약을 하나님과 맺고 있다. 악한 생각과 나쁜 말에 탐닉하는 것은 알곡 가운데 뿌려진 가라지이다. 교인이 된 사람들 가운데 끊임없이 품성을 달아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참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분별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기들의 판단을 말하지만, 그들의 근시안적인 것은 결함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점에 대해 전적으로 알지 못한다.

121 이런 사람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분별하는 목적으로 달란트를 주시지 않았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각자 감독을 받아야 할 개인적인 “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시기와 질투와 험을 찾는 누룩은 영혼을 사로잡을 수 없고 전체를 위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사업의 대열에 자신들의 생애를 바친 모든 사람들은 목회자이거나 백성들이거나 간에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네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이 적용될 수 있다. 뿌연 유리가 마음의 눈앞에 놓인 것 같으며 그들은 이것에 따라 모든 것을 바라본다.

진리의 누룩은 그 안에 생명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심령 안에 있는 치명적인 오류를 밖으로 끌어내도록 역사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들에게 동참해야 한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빌 4:8, 9).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진리가 그들 앞에 제시된 것처럼 그대로 진리를 행한다면,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은 고통이 덜어질 것이다.

진리는 실제적인 생활에서 영향을 행사해야 한다. 큰 일과 작은 일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은 것이 보이지 않고 크고 높은 유익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많은 교인들의 실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공언하는 그리스도인 생애에 큰 결점들이 있다. 그들의 말은 진리에 의해 발효되지 않았다. 그들의 품성이 지금 성소의 저울에 달려서 그들은 “부족하다”고 선언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를 실제로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리의 누룩은 산 원칙이며, 작은 일에 있어서 활용되어야 하며 매일의 생활에서 영향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세속적인 것에서 보이는 동일한 자아에 대한 사랑, 동일한 이기적인 탐닉, 같은 기질과 조급한 말이 그들의 생애에서 보인다. 같은 예민한 자존심, 동일한 본성적인 성향에 굴복하는 것, 동일한 품성의 왜곡됨이 진리가 그들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창을 막고 영혼의 창문을 닫아 내려서 그리스도의 의의 햇살을 몰아 낸다. 그리고 자신들은 진리를 믿으면서 달콤한 즐거움도 없고 확신과 행복도 없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죄는 그들 자신의 문안에 엎드려 있다. 그들은 심령 안에 진리의 누룩을 숨기지 않았다.

생수가 깨끗하고 달콤한 흐름을 통해 메마른 심령의 밭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열매의 성장이 있을 것이다. 122 그렇게 되면 진리는, 지금 언행에서 보이고 있는, 왜곡된 기질과, 결함이 있는 선천성 및 후천성 성향에 의해 악평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 우리 모든 백성들이 불일치한 작은 행동을 함으로 자신들이 당하는 손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의 영혼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리를 그들 앞에 가져오기 위하여 애쓰고, 그들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정신에는 일관성이 없으며, 그들의 영향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세우고자 하는 그것을 무너뜨린다. 그들의 음성에는 비통함이 드러나고 무자비한 것이 그들의 판단에서 나타난다. 태도가 감정에 대한 무언의 언어인 것과, 그리스도와 매우 멀어진 이 모든 일과 매일의 증거는 그대를 대적하며, 그대가 구원하기를 원하는 자들의 심령을 강퍅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런 것들에 관한 생각이 보다 더 신실하게 되기 위한 엄숙한 결심을 하도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사도의 말씀이 우리에게 중하게 여겨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 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이 성경 말씀은 주의하고 실행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도는 계속해서 말한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3-16).

경건을 공언하는 남녀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 진리의 누룩이 심령 안에 감추어져서, 품성 안에서 역사하며 온 존재를 하나님의 뜻과 길에 확고하게 하는가? 우리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회심시키시는 능력이 필요하다. 불순종과 진리를 부정하는 가운데 역사 하는 악의 누룩은 부식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누룩이 심령 안에 심겨져야 한다. 이것은 사람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서 강력한 특성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진리의 누룩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면 한 사업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명하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1898년 원고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