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읽기:
   
   
   
   
   
   
   
   
   
     
 
 
 
 
   
44장 목회자와 평신도의 책임:영혼을 위해 함께 일함
 

[대총회 마지막 집회에서 행한 화잇 여사의 설교, 1883.11.20, 화요일, 미시간 배틀크릭]

10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이 총회-성경 연구와 다른 집회, 그리고 이 총회와 관련된 모든 것-가 내게 아주 깊은 흥미 있는 것 중의 하나였으며, 이전에 어떤 다른 종류의 집회에서 결코 누리지 못한 것을 이 집회에서 누렸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우리 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받았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작별을 고하며, 목회자들이 서로 다른 임지로 떠나려 할 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인가? 우리 모두는 대총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오늘 이곳에서 만난 것처럼 다시 다 모이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아침 집회에서, 여기에서 주어지는 간증을 들으며, 마치는 찬미- -가 울려 퍼질 때, 나는 거의 내 자신을 잊었다. 내 마음은 저쪽 다른 변경에, 하나님의 도성 흰 보좌 주위에 거대한 집회가 있을 때로 가게 되었으며, 구속받은 자들은 거기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승리와 환호와 찬양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제 그것은 나에게 거룩하고 달콤한 느낌을 주었으며, 내 마음을 부드럽게 했고,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보좌 주위에 둘러 모여 얼마나 큰 행복을 누릴 것인가! 슬픔과 이별은 더 이상 없다. 다함이 없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평안과 행복과 영광 중에 살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큰 행복한 무리들이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의 동일한 특권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왕족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구주의 무한한 희생을 생각할 때, 이 고귀함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속한 이 모든 특권들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며, 또한 매일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 중에 어느 누가 불평의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불만의 말 한 마디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것들이 우리의 심령에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는가?

우리는 지상에서 가장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그분께 대한 우리의 신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소망을 생각하고 믿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다른 세계로까지 미치게 되며, 그것이 끝없는 영원의 세월을 통해 계속된다는 것을 알 때, 나는 오늘밤 그대에게 주어진 이 간구에 대해 그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다. 11 그들은 이 목회자들 중에서 여기 저기서 다른 현장에 가도록 부를 것이다. 그리고 한 목회자를 다른 곳으로 가게 하는 것은 그가 온 현장으로부터 그를 빼앗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특별한 노력이 주어지지 않은 큰 도시들이 있다면, 내 형제여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한 검이 내 심령을 꿰뚫은 것같이 느낀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일으켜 이 수고를 하게 하실 때가 온 것같이 느낀다.

만일 이 사업에 내가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 사업에 자신을 바칠 사람들을 더 많이 찾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그 일의 근저에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에 오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이 현장에서 일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온다. 그러나 거기에는 수고가 거의 없으며, 그 목적과 목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열심이 매우 적어서 그들은 실망하고 만다. 그리고 매력은 아주 적어지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도움도 매우 적어져서 많은 이들이 목회에 자신을 계발시키는데 더디게 된다. 자신들을 목회에 바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능력의 결핍이나, 그들이 목회에 적합한 전망이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거에는 이기심이 놓여 있다. 그들은 세상적인 사업에서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기심이 그 사업에서 그들을 멀어지게 했다. 사업을 위해 준비하여 대학에서 나오는 한 사람이 있는 곳에 이십 명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수고에 이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옹호하는 진리는 인기가 없다. 그것은 인기가 없으며, 결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 진리는 언제나 십자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하는 분야는 회피한다. 그들은 화롯가를 방문해서 가정 안에서 성경을 들고 그 거룩한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며, 그 영혼의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고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지 마소서”(욜 2:17 참조) 라고 부르짖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느끼고자 아니하며, 가족들 개개인과 알려고 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기도하려고 하지 않으며, 젊은이에게 그들 영혼을 위해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고, 그들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사랑스럽게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이끌고자 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사업은 목회자로 하여금 무릎꿇어 기도하게 하며, 그의 성경으로 이끌어 주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그의 신뢰로 삼게 하고, 믿음으로 행하며,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도록 기도하게 한다.

12 이것은 수고하는 일이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계발시키는 종류의 일이다. 우리 목사들 중의 어떤 이들이 거의 믿음이 없고, 낙담하여 구름 아래 행하는 이유는, 영혼들에 대하여 마치 자기들이 셈해야 하듯이 깨어서 신실한 목자처럼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파숫꾼은 신실한 목자들이다. 목사들의 자질은 그의 뛰어난 재능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지식은 그의 멸망으로 입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심령은 전적으로 굴복되어 하나님께서 선택하듯이 꼴 지어져야 하고 감명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목회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분은 “선지자들의 학교”에 가시지 않고 어부들에게 가셨다. 그분은 그들을 취하셔서 그분과의 연관을 짓게 하셔서 그분의 꼴을 그들 위에 새기셨다. 이것이 주께서 원하시는 일꾼-그분의 발에 기꺼이 앉는 사람, 주님을 위해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최상권을 위해 항상 투쟁하지 않는 사람이다.

만일 그대가 추수장에서의 책임이 너무 크다고 느낀다면, 그대 앞에는 다른 일이 놓여 있다. 그대는 작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작은 일을 신실하게 행한다면, 그대는 보다 큰 책임에 적합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큰 일을 맡기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동안, 부담을 지고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진리를 심령에 닿게 하며 진리의 씨를 뿌리며 돌아다니는 일을 통해 얼마나 큰 일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생각했다. 지성적인 마음을 가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될 만한 그의 일들을 할 수 있으며, 자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다면, 그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그의 이웃과 아직 진리가 들어가지 못한 대도시들 가운데 뿌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수고에 함께 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매우 연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콘래디(Conradi)형제의 간증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얼마나 성공한 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사업에 전적으로 열렬하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처럼 그것을 붙잡았다. 비록 성화된 달란트와 재능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빛나는 도구이지마는, 성공을 가져온 것은 재능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업에서의 철저한 열심이었다. 일꾼이 백성들의 심령에 접근했다면, 백성들은 “아, 이 사람은 열심이 있다. 그는 심령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시장 거리에서 한 사람이 단순하고 열렬하게 말하고 있을 때, 거기에는 남아메리카로 가는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그 모임에 참석해서 말하였다. 13 “그 연사는 매우 열심 있는 사람이요, 그가 말하는 것은 실제인 것처럼 보인다. 제시하는 것에는 무언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자기가 남미로 항해를 하고자 하는데,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이 내게 주는 모든 종이와 팜플렛을 가져가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러프보로우 형제는 그에게 모든 인쇄물을 다 주었다. 그는 우리가 준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이제 형제들이여,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다리를 건너려고 하면서 “이 다리는 안전한가요?” 하고 물었다는 것을 들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몇 번 건너보았는데, 아주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별 어려움 없이 건너기는 했지요” 라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이 다가올 때, 그 사람은 다리에 아주 가까이 와서, 열심히 손짓하며 말했다. “이 다리를 건너지 마세요. 계속 가면 위험합니다. 이 다리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그 다리의 상태를 이해하고 그것을 건너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한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왜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과 달리 그 사람을 멈추게 했는가? 왜냐하면 두 번째 사람은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의 복리를 심령에 가지고 있었다.

주께서 그분의 봉사에 원하시는 것은 철저히 열렬한 사람이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게으름이 있다든지, 그처럼 거룩하고 진리를 시험하고 다루는 사람들 중에 무관심과 부주의한 무심함이 있다면, 주께서는 그대들이 그것을 내버려두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대가 백성들에게 진리를 말할 때, 그대 자신이 그것을 믿으며, 그대가 공언하는 진리에 비할 만한 것을 질 수 있는 열심과 열렬함을 갖기를 그대에게 원하신다.

같은 설교를 여러 번 반복해서 주지 말라. 하나님의 영께서 그대를 감명 시키고, 신선한 아이디어와 증가된 빛을 주실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의 감명에 예민한 심령이 필요하며, 그분의 영으로 완전히 물든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온유함과 심령의 겸손함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배우는 사람, 성경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증가된 빛을 얻지 않고는 배우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할 수 없다. 같은 근거 위에, 같은 결론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께 그대 마음에 진리의 보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가져다주실 기회를 남기지 않고, 그대의 설교를 하지 말라.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배운 신뢰와 믿음을 감동시킬 신실함과 열심으로 진리를 제시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부지런히 연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빛의 섬광이 페이지 위에 올 것이며, 밝은 진리의 광선이 그대에게 드러날 것이며, 그것은 그대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될 것이며, 그대의 뼈 안에 저장되는 불과 같이 될 것이다. 그대는 성경 진리를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들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고귀한 부요, 재물인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4 그리고 그대가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빛이 올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우리 스스로 연구하기를 원할 것이며, 철저히 열심히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의 다른 자리들, 수고의 현장에는 마땅히 배양되어야 할만큼의 사랑과 부드러운 느낌이 없다. 사랑은 계속적인 배양이 필요한 부드러운 하늘의 식물이다. 우리는 이곳 총회에서 하나님의 택한 가족으로서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서로 간에 투쟁을 좋아하고 언쟁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안에는 전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나 우리 형제들이 서 있는 것을 허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대들이 불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은 안된다, 이것은 안된다고 생각하라.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인줄 알리라”(요 13:25). 그 때에 이것이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져야 할 신임장이 될 것이다. 사단은, 우리가 사랑을 키우기를 그치면, 하늘의 감화보다는 그의 표를 우리가 받게 될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늘에서 같이 살 것인가? 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평안과 조화 가운데 있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 조화되게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사업, 감정, 우리의 행위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한다. 조화를 이루어 함께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일하기를 원하시는 진심 어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 중에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으며, 하늘로부터 온 진리를 설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행이, 동료 목회자들을 의심하고 질투하는 것을 드러낸다면, 그들은 사업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간에 대적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온유함이나 심령의 겸손함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조금 앞서려고 한다.

그대들 중에 어떤 이들은 서로를 대적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울 것이 있는가? 내 형제여 이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투쟁이라도 있다면, 그 이유는 진영 안에 원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의 심령 안에 작용하여 적의를 불어넣는 사단이며,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은 아니다.

어떤 이들-거기에 다툼이 없다면-은 그들이 생각할 때 그들을 추켜줄 수 있는 우월한 일의 상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의기소침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대열에서 이런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런 것의 첫 씨를 뿌리는 것도 없어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어떤 곳으로 가면서 그들 중에는 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길에서 다툰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15 그분은 한 어린이를 택해서 그들 중에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이 자아 만족과 다툼, 이기심과 자의에 빠져 있는 것은 영혼을 예수에게서 분리시킨다. 우리는 이 의지와 강한 목적이 바른 방향으로 바뀌기를 원한다.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뜻이 될 의지를 원한다. 우리가 하나의 뜻과 방법을 갖는 것은 바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되어야 한다. 마음과 뜻이 바른 방향으로 바뀌게 될 때 우리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는 현장에 있는 종들이 함께 올 수 있으며, 같이 머리 숙여서 눈물과 심령의 통회함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더 크게 기뻐하고 우리에게 매력적이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올슨 형제의 일이든, 쿠드니 형제의 일이든, 누구의 일이든-사업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업 안에서 일하실 것이다. 일꾼들은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 간에 연결되어, 아픔과 슬픔의 시간에 서로 위로할 것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복을 빌 것이다.

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겸손한 아들과 딸들이 될 것이다. 오, 우리는 성령의 다른 감촉을 갖게 될 것이며, 모든 심령은 이 전을 떠나기 전에 감동을 받을 것이다. 오,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성령의 침례를 받게 될 것이다. 오, 예수님의 사랑은 하늘의 노래와 같이 달콤한 음악으로 기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심령의 악함은 부서질 것이며, “이 형제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라” 하는 소리를 진정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영국인 형제들과 함께 같은 이웃을 위해 일하게 될 독일인 형제들을 지원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우리 모두가 자신의 심령에 마땅히 거해야 할 사랑을 위해 애쓴다면, 우리는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능력이 될 것이다. 아무도 사단보다 이것을 더 잘 알지 못한다. 그는 형제들의 심령에 사랑보다는 시기와 증오의 씨를 뿌리기 위해 애쓴다.

두 형제가 같은 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일이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들을 시험하며, 그들은 분열된다. 그들은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분리되어 일해야 하는가? 그들이 여기에서 조화를 이루지 않음으로 우리는 그들을 분리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연합되어 일할 때까지 함께 일하게 하라. 하늘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위해 승리의 노래를 하는 데 있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자, 이 연합은 언제 이루어져야 할까? 우리는 하늘 집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전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녹이는 능력은 바로 이곳에서 느껴야 하며, 우리 심령의 모난 측면은 바로 녹아야 한다. 16 우리 심령으로부터 사랑과 평안과 조화가 흘러 나와야 한다.

만일 그대가 문을 열면, 예수께서는 안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도록 심령의 문 앞에 사단이 쌓아 놓은 쓰레기를 치우라. 그분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대는 문을 열겠는가? 예수께서는 이 친교를 주실 것이며, 그대는 그분의 빛과 안식을 갖게 될 것이다. 거기에 어떤 의견의 차이가 있겠는가? 거기에 어떤 다툼이 있겠는가? 아, 내가 이것을 생각할 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 심령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하늘에 대한 어떤 권리라도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인성의 팔이 우리 모두를 안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골 3:3).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는 것에 연합이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감히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반대하는 한 가닥 생각이라도 허용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감히 어떻게 그것을 행하겠는가? 우리는 모두에게 녹이는 자비가 쏟아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마음먹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 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한다고 공언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대로 우리 자신을 심지 않았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생각한 것을 약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구속받은 한 가족임을 느끼기를 원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간원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6).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그리스도의 종교이다. 우리는 회심한 남녀가 되었을 때, 더 깊이 마시기를 원한다.

나는 그대에게 우리는 양뿐만 아니라, 양들도 먹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급한 베드로에게 세 차례나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 그는 “주여 그러하외다” 하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그 양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보여진 애정이 필요한 양들도 먹여야 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는가?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원한다.

그대는 무엇인가를 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를 기쁘게 하는 것을 선택하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택해야 한다. 나는 주님께 대한 완전한 순복으로 머리 숙이는 데서 빛과 행복을 찾았다. 나는, 엄청난 겸손 가운데 그분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한다. 그분은 내게 내려 오셔서 나를 이끌어 올리셨다. 그대는 그분의 겸손한 영을 본받겠는가? 그대는 그대의 이기심과 위엄을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다가 가겠는가? 그대는 어떤 희생을 할 것인가? 여기에 겸손의 영광스러운 옷을 입은 어떤 이들이 있다.

17 그대는 대학에서 올 수 있었던 백 명의 일꾼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세상적인 대열에 섞인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적인 동기와 세상적인 표징을 가졌으며, 그래서 세상적인 정신과 세속적인 감정이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 하나님의 목적에 대답하도록 하자. 우리 모두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하자. 이 사업을 담당한 것은 오직 목회자들뿐인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남녀들이 담당한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는 그분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 일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듯이, 진리의 지식으로 영혼을 데리고 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기 시작한다면 그대는 영혼을 구원할 것이다. 오, 영혼들의 피가 그들의 책임을 등한히 하고 있는 여기 배틀크릭의 많은 사람들에게 놓여 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백성들, 평신도들에게 경고의 기별을 주기 위해 시온의 성벽을 지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이 있다.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이 그대보다 조금 더 일한다는 것 때문에 열심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형제들과 함께 깨어 있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대는 영혼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대의 심령에 투쟁의 말 한마디가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그대의 예모는 그대의 관심을 나타낼 것이며, 그대의 은사는 그것을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이 총회는 내 생애에 참석한 어떤 총회보다도 가장 좋은 총회였음을 말하게 되어서 기쁘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영혼에 좋은 잔치였다. 그리고 내 형제들이 모든 면에서 모든 사업을 하기 위해 현장으로 간다는 전망을 볼 때에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의 샘을 느낀다.

형제 자매들이여, 예수님은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렇다면, 형제 자매들이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자. 그리고 형제에 대하여 어떤 악한 생각이라도 들어오거든 하나님께서 그 형제를 축복하시도록 무릎꿇어 기도하며, 심령이 심령과 하나 되어 고동치도록 간구하자.

양을 먹이고 양떼를 치자. 여기에 그대가 매우 부드럽고 아주 예의바르며 매우 친절할 필요가 있는 사업이 있다. 그대는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혹은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을 나타내면서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공손함을 보여야 한다. 그대는 다른 사람을 하늘로 이끌어야 한다고 공언하며, 하늘 왕국으로부터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

나아가서 모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큰 책임인가! 앞으로 나아갈 때,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가! 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오, 하나님, 누가 이 일에 충분합니까? 나는 그것을 느꼈다. 누가 이 일에 충분한가?

우리가 그분께 마음의 문을 열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18 모든 발걸음은 믿음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해 무엇을 싸워야 할 것인지를 경험에 의해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불신의 말이나 믿음이 없는 말 한 마디 없이 하라. 그대가 심령에 감사의 말을 갖게 되면, 거기에는 불평의 말 한 마디가 없고 그 대신 찬양이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우리의 심령 안에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노래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다.

이제,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지만, 형제 자매들이여, 이 사업에 주어진 빛과 연합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말하고 싶다. 큰 책임이 목회자들에게 놓여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수 있는 자리에 자신들을 놓아야 한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렇게 우리는 비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대에게 놓일 것이다. 그대는 한 영혼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으나 하나님의 천사가 그대 곁에서 가까이해서 그 영혼을 움직일 것이다.

만일 그대가 천사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면, 가서 일하라. 그러면 그대는 험담을 할 시간이 전혀 없거나 험담하는 주된 흐름에 끼여들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도와 시간과 영원을 위해 일하게 하실 것이다.

나는 이 전에 다시 서게 될 특권을 다시는 갖지 못할지 모르나,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흰 보좌 주위에 모일 것인가? 우리는 주님께 영혼의 수확을 가져오도록 일하자.

성령의 영향은 투쟁의 정신 때문에 목회자들로부터 떠나갔다. 그것이 영원히 그치도록 하자. 주님께 나아 와 그분께서 당신의 심령에 그분의 달콤한 영을 불어넣어 주시도록 하자. 사랑의 부드러운 식물이 간직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이 총회 집회의 특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 가운데 오실 때, 우리가 서로 인사하게 될 때, 그것은 얼마나 멋진 집회가 될 것인가!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장면이 될 것인가! 만일 우리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빛과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로부터 우리에게 비췰 것이다. 나는 그대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대들이 영혼을 구원하도록 나는 밤 동안에 얼마나 그대들을 위해 기도하였는가!

우리가 하늘 집에 이르러 서로를 돌아 볼 때, 우리는 여기에 이 사람이 있고 저기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그녀)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열렬하게 일하였는가! 그리고 여기에 그들이 머리에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오,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 온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사단은 나누고 분열시키기 위해 끼여들지 않을 것이다.

19 사랑 안에서 일하자. 연합하여 일하라. 다른 이를 그대 자신보다 낫게 여기라. 잠시 후에, 그리고 조금 뒤에, 나는 천년 기가 오는 것을 본다. 나는 그분의 아름다움 가운데, 비할 데 없는 그분의 멋진 매력 가운데 왕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풍성하게 들어갈 때까지 빛 가운데 계속 따라가야 한다. ­1883년 원고 5